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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묵상

매일 한 구절, 말씀을 따라가는 여정

사도행전

사도행전 4장 28절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사도행전 4장 28절

악인의 쓸모

20251002

시편을 따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노래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받아내는 공동체의 모습은 놀랍습니다. 그들은 핍박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겪지 말아야 할 것으로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그것조차 말씀대로 되는 일들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28). 권력자들의 야합,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핍박, 죽음의 위협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세상의 악인도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관건은 나입니다.

세상의 좋은 것만 모아 한 곳에 놓으면 얼마다 더 좋을까를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만 서로 뭉치면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안타깝게도 이런 생각은 순진해 보이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이상적이지만 지혜로운 생각은 아닙니다. 사람의 본성, 물질의 본성을 헤아리지 못하고 기대치만 잔뜩 부풀린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만 한 곳에 모아 놓으면 결국 그곳에서 쓰이지 않는 것들은 쓰레기로 전락해버립니다. 예쁜 쓰레기가 쌓이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좋은 사람만 만나고 모이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드림팀이라는 건 좋은 사람만 모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맺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도 여전히 좋음과 나쁨이 섞여있게 마련입니다. 단지 그것을 상쇄하는 서로의 연결, 즉 서로의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 의미를 좀 더 넓혀서, 이런 의미로 악인도 쓸모가 있습니다. 나쁜 사람 하나 없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에덴에서도 범죄가 있었고,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 안에서도 범죄가 있었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그리고 더 큰 그림은 그런 죄와 악행까지도 품어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점을 성경은 반복적으로 제시합니다. 이러한 성경의 역사, 곧 구원의 경륜 안에 내가 있습니다. 내가 있고 우리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사람들도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억울한 종교재판으로 예수님이 당하셨고, 비슷한 형태로 사도들도 당할 뻔 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죽지 않고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이 공동체로 돌아갔을 때, 신앙 공동체는 철저하게 더 숨거나 붙잡히지 않으려고 도망가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을 찬미하며 기도했는데, 이는 억울함을 해소해 달라는 탄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순종하는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그들이 인용한 다윗의 시편(2편)은 세상의 군왕들을 비웃으시는 하나님을 표현합니다. 사도들과 공동체 역시 헤롯과 빌라도, 제사장들과 권력자들이 핍박해도 그것조차 구원의 도구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악인과 그들의 악행조차 하나님은 구원하심의 근거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관건은 나입니다. 내가 악인의 쓸모에 포함될 것인지, 구원하심의 은혜에 포함될 것인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미 주신 복음과 구원의 약속에 대하여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오늘은 어떤 삶을 살겠습니까? 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오늘이 그 답이어야 합니다. 

​불평만 하고 있지 마십시오. 원망이 있더라도 가야 할 길을 가야 합니다. 넘어졌다면 깊이 받아내고 은혜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믿음으로 몸을 쓰십시오. 내게 주신 구원이 확실하다면, 진심으로 구원을 믿고 복음에 순종한다면 무너져 있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쓸모 없는 이는 없습니다. 악인도 구원의 쓸모로 사용하실 겁니다. 그러나 나도 구원하심 안에서 쓰임 받는 겁니다. 아프고 버거워도 믿음만 되십시오. 주님이 계시니 몸 된 믿음이 되십시오.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이 됩니다. 그러니 나는, 오늘 믿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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