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묵상
매일 한 구절, 말씀을 따라가는 여정
사도행전
사도행전 7장 31절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사 도행전 7장 31절
놀이하시는 하나님
20260204
모세의 일생에서 빠지지 않는 사건이 몇 개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모세의 소명기사, 즉 불꽃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스데반은 출애굽기 본문을 성실하게 짚어가는데, 광야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광경을 본 모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31). 광야에서 볼 것 없는 가시떨기 나무를 가지고 하나님은 모세의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밋밋하고 의미가 불분명한 방황을 살던 모세의 마음에 경이와 호기심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놀이가 시작됩니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본능이 놀이에 있다고 주장하는 요한 하위징아는 그의 책 <호모 루덴스>에서, 노동과 놀이의 차이점을 구분하고 통합합니다. 현대사회에서의 노동이 생산성에 맞춰 있는 반면 놀이는 휴식으로 이해한다는 이분법적 분류를 넘어서, 노동 속에서도 놀이의 즐거움과 몰입을 찾아내며 의미와 문화를 발전시켜 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난해한 이 주장을 우리가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증명이 <생활의 달인>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힘겨운 노동으로 치부될 수 있는 자신의 생계를 놀이처럼 파고들어 어떤 경지에 다다릅니다. 그때부터 노동은 피곤하고 지치는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담은 수준으로 깊어지고 높아집니다. 이는 학습 이전에 인간에게 내재된 본성이라는 게 요한 하위징아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런 본성이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요? 기독교 신앙은 이것이 하나님을 닮은 인간이라고 제시합니다. 창세기의 창조는 목적성만으로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합니다. 위르겐 몰트만은 <놀이의 신학>이라는 책에서, 창조를 창조주의 무한한 기쁨의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사람은 이런 창조주의 기쁨을 모방하면서 하나님의 놀이에 참여하고 닮아간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불꽃놀이를 하셨습니다. 이 광경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멀리서 보다 돌아갈 수도 있는데, 모세는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31).그는 주의 깊게 살펴보았고 놀라워했습니다. 더 알고 싶은 마음에 가까이 갔습니다. 이 순간이 위대한 출애굽의 출발점입니다. 문제는 이런 의외성과 경이함을 딱딱하게 규정하고 치워버리는 교조주의/율법주의입니다. 바리새들과 율법주의자들,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경이로운 장면들을 무시하고 덮어버리려 했습니다. 기쁨의 놀이가 자기들의 권력을 흔든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럴 수 있습니다. 일상의 작은 기쁨들, 하나님 안에서 의미와 재미를 발견하는 호기심을 그저 귀찮다고, 별 것 아니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나쳐 버리기 쉽습니다. 그렇게 맑은 웃음을 잃고 잿빛 삭막한 날들을 보내면서 지쳐갑니다. 그저 바라는 것은 일탈의 욕망만 남아 소진되고 맙니다.
오늘은 어떻습니까? 오늘이 하나님의 놀이터는 아닐까요? 오늘 중 어딘가에, 일상의 어떤 것에 놀이하시듯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지 않을까요? 이런 마음으로 일상을 대한다면 오늘이 더 재미있고 밝아질 거 같습니다. 이런 오늘을 기대합니다. 어딘가에서 숨어 놀이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과 함께 놀면서 웃는다면 좋겠습니다. 광야의 불꽃놀이처럼 말입니다.
.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