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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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 7장 54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사도행전 7장 54절
부담스러운 복음
20260501
말씀질문
1. 복음과 책망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2. 오늘 나를 통해 드러나야 할 복음의 현실태는 무엇일까요?
사도행전은 스데반의 긴 변론에 대한 종교법정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54). 마음의 반응이 몸으로 표현될 때, 속에 있던 것이 겉으로 드러날 때를 진심이라고 말합니다. 법정에서 그들의 진심이 드러납니다. 종교적으로 고결해 보였으나 그들의 진짜 속마음은 분노였습니다. 이렇게 복음은 속에 있는 것을 드러냅니다.
빅터 프랭클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그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스티븐 코비는 삶의 주도권으로 해석했는데요,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 스스로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식의 주도적인 삶을 놓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자극은 선택할 수 없지만 반응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해서 각자의 삶을 결정짓는 요소는 외부의 자극보다 나의 반응에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사건, 말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나라는 사람이, 내 삶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반응하기 전에, 반응하려는 자기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 내면의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훈련해도 내면의 힘을 넘어서는 강력한 자극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복음이 그렇습니다. 해서 복음은 훈련된 내면을 넘어 본능을 드러나게 합니다. 무엇보다 복음은 속마음을 드러냅니다. 내가 사회적 가면을 쓰고 단단하게 훈련했더라도 그것을 드러내 진심이 어떠한 지를 밝혀냅니다. 스데반의 말에 분노했던 유대교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평생 율법을 지키며 종교적으로 엄격하게 훈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종교 고위직이었고 함부로 말하지도, 함부로 행동하지도 않았던 철저한 훈련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스데반이 전한 복음과 그 역사, 그리고 책망에 그들의 종교적 훈련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찔려 분노했는데, 개역개정판은 이를 "이를 간다"고 표현했습니다. 노골적인 분노와 죽이려는 살의가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몰던 때와 마찬가지로 성전주의자들은 스데반을 죽음으로 제거하려 합니다. 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살의가 그들의 실체였던 것입니다. 복음이 드러내는 이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복음이 부담스럽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복음에 순복하는 것밖엔 없습니다. 다른 마음을 품어 두 마음이 되어 있다면, 결국 그게 드러날 것입니다. 진심으로, 전심으로 복음밖에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성도의 살 길은 십자가 복음 뿐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리고 뒤집어지더라도 십자가만 나타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적당히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해서 오늘도 부담스러운 복음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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